[인터뷰]도청앞 천막촌 사람들…추위 속 거리로 나온 사연
진정성 있는 대화 요구도 묵묵부답…색안경 없는 관심 필요

도청앞 천막촌 사람들

따뜻한 어묵국물이 생각나는 겨울. 밤마다 살을 에는 듯한 한파에도 포근한 집이 아닌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있다.

제주 도청 앞에 설치된 10개의 천막. 좁디좁은 몇 평의 천막에 의지해 제주현안에 대해 걱정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천막촌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해 12월 29일 홀로 단식투쟁을 시작한 김경배씨를 돕기 위해 김씨의 작은 텐트 주변으로 하나 둘씩 천막이 들어섰다.

이들은 제주2공항 건설, 영리병원, 비자림로 등 제주의 현안 해결을 위해 가정이 아닌 이곳에서 추위와 홀로 싸우며 도청 앞 천막 안에서 제주도지사와의 진심이 담긴 대화를 기다리고 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은 다르지만 이들은 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제주의 민주주의가 땅에 떨어진 천막 철거 및 강제퇴거 사태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기본계획용역수립 중단과 도민의견수렴 과정을 거쳐달라는 것.

36일째 단식을 농성을 펼치고 있는 김경배씨는 “제주 도민을 대표하는 지사의 이 같은 불통은 반민주주의적이며 자신의 귀를 막고 성난 민심의 뺨을 내리치는 것”이라며 "사과와 함께 기본계획 중단과 도민의견수렴과정이 이행될 때까지 단식은 계속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현재 제주도는 제2공항이 필요하다면서도 정부와 반대 측 충간에 끼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살롱드 문 활동가 엄문희씨 "해군기지, 제2공항 군사의 섬"

‘살롱드 문’ 문지기(활동가) 엄문희씨는 “홀로 작은 텐트에 의지하며 싸우고 있는 김경배씨가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제주의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김씨를 위해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천막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엄씨는 지난 7일 이뤄진 행정대집행을 보면서 과연 제주에 민주주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의 정치참여 기회는 사실상 없었고 제주도청은 시민의 표현의 자유마저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정대집행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처럼 내동댕이 쳐질 때 끝까지 힘을 모아 제주의 미래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하며 단식을 시작한지 7일째다.

엄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 아이들은 마을 친구가 돌보고 있다.

엄씨는 "천막촌에 나와있는건 자신뿐이지만 실상 아이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마을 친구 역시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씨는 제2공항 등 제주의 현안들에 대해 ‘재앙’이라고 말했다. 절차적인 문제를 떠나 제2공항은 원천적으로 무효화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제주를 걱정하지 말고,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제주도민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엄씨는 “해군기지에 이어 제2공항은 군사공항이 될 것이고 제주는 군사기지의 섬이 될 것“이라며 ”제주도는 더 이상 앵무새처럼 따라하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씨는 “평화의 섬 제주를 폭력적 군사기지로부터 지켜야 한다”며 “원 지사는 제주도의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핑계만 대고 있다. 이는 직무유기이며 일하지 않는 도지사는 필요 없다. 더 이상 은폐하지 말고 입장을 당당히 밝히고 퇴진하라”고 성토했다.

#예술행동천막 부순정씨"제주의 아름다움 사라져"

예술행동천막 부순정씨는 제2항공이 들어서면 사라지는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리고 있다. 순정씨 또한 결혼을 했지만 가정을 뒤로 하고 홀로 천막을 지키고 있다.

제2공항이 들어서면 산·오름 22개, 용천수 46개, 새 42종, 신당 20여개, 동굴 11개 벵듸 등 제주의 아름다움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 것.

순정씨의 천막이 설치 된지는 10여일이 지났다. 그녀는 김경배씨의 단식이 길어져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고 제주도정과 홀로 싸우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기 위해 홀로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순정씨는 가장 먼저 제주인임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도청 앞 계단에서 추위와 싸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주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막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순정씨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무시당한 것”이라며 “ 제2공항이 들어서면 이곳은 군사공항이 될 것이고 실제로 강정마을에서 미국 군인들이 제주인을 향해 ”You are a slave(너는 노예야)하며 비웃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순정씨는 “이런 상황들이 너무 수치스럽고, 미래에 우리 아이들에게 또 다른 제주 4·3 같은 사건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운명의 선상에 있는 제주를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녀는 원지사를 향해 “제주는 당신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다. 도민들에 대한 태도는 제왕적이다. 진정한 제주도민을 위한 도지사라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진심어린 대화를 시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연구자공방 정영신 연구자 "제주미래 다 같이 고민해야"

연구자공방을 지키고 있는 정영신 연구자. 그는 제주 동아시아 평화와 환경을 연구한다. 연구자로서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동료 연구자 3명과 함께 텐트를 설치했다.

정씨은 “제2공항 건설과정에 절차적인 문제도 문제이지만, 의사반영이 정당하지 못했다. 도민의 의견이 묵살되는 것을 보고 연구자로서 힘을 보태고 싶어 천막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어 “야만적으로 행정대집행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가슴이 답답했다”며 “같이 제주의 미래를 고민하고 공유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도민의 삶과 직결되는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지사를 향해 “행정대집행은 원지사의 책임이다. 천막촌 사람들에게 정중히 사과를 해야한다.”며 “제주도민 주민들의 삶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기준이 도민이 되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청소년 청년 천막 임원섭 대학생 "청사 앞 문구 가슴에 새겨야"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청년 천막. 이곳은 도내 학생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함께 제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학생들은 돌아가며 36일째 릴레이 단식을 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일 무자비하게 진행되는 행정대집행을 보며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제주의 미래인가’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고 한다.

소통은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비참하게 짓밟힐 수 있는지 제주도의 수장인 지사가 권력을 이렇게 남용해도 되는지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인지 의심했다고 한다.

임원섭(제주대·2)학생은 “도민을 생각하지 않는 도지사는 물러나야 한다. 각 청사 앞에 걸려있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 ‘배려와 협력으로 모두가 행복한 제주교육’ 문구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고 제주의 수장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다. 제주의 백년대계가 걸린 현안들을 도민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공정하면서 객관적인 절차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는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이제 제주도는 실타래 같이 꼬인 문제들을 풀기위해 우유부단함을 버리고 과감한 결단력으로 결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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